성희롱의 판단기준 (성인지감수성의 이해)

취미부자 김쪽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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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사 면접을 술자리에서 치른 20대 여성. 회사 대표는 성적인 모욕을 일삼았습니다. 이외에도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묻거나 면접관과의 신체적 접촉을 강요하는 등 면접장 추태가 위험수위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권위는 이런 발언과 행동 모두 성희롱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는 건 느낌이고요 그 느낌을 주관적 이잖아요. 그게 과연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규범이 될 수 있을까요? 너무 애매해서 다들 피해자가 그렇게 느끼면 그런 거라고 말하잖아요. 너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같기도 합니다.

1. 성희롱의 판단기준은 무엇일까?

 위 상황처럼 많이들 그렇게 오해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말그대로 오해입니다. 어떤 행위가 성적굴욕감 내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인지 여부는 피해자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면 피해자 개인의 판단이 아닌 누구의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생기는데, 그것은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인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평균인의 관점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 평균인의 관점이 아니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인의 관점, 이를 합리적인 피해자의 관점 이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인 평균인이 아니라 피해자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인의 관점이라는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인은 권력관계에서 차별당하는 쪽을 이해 하기 어렵습니다. 피해자들이 신고하고 나서도 비난을 당하고 제차 다른 피해를 입게 되는 현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권력관계 위에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서 모욕을 당하거나 무시, 비하, 배제되는 경험이 비교적 적고, 따라서 피해자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개별 피해자의 개인적 주관적 감정을 고려하되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권력관계의 열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적 경험의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해자의 사정을 잘 인지하는 '성인지 감수성'과 이어집니다.

 

2.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성별에 따라 다른 사회 문화적 조건에 처해 있는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자기 입장과 처지에서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피해자의 처지가 어떨지에 대해서 알고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라는 것이죠.

 

3.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한 판례

 판례에서는 맥락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의 노출되는 현실을 보라'고 말합니다. 2 피해가 성희롱 특징에 핵심입니다. 일터라는 조직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성희롱 자체의 발생 아니라 이후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조직 구성원으로서 처하게 되는 전형적인 현실들이 있습니다. 다음은 2018 대법원 판결문 인데요. 판결이 바로 성희롱 문제 있어서 성인지감수성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최초 대법원 판결 입니다. 피해자는 이러한 2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하는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판결문을 보시면 피해자들은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현실을 피하기 위해서 이렇게 행동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속상한 이야기지만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너도 좋아한 아니냐'는 '처신이 단정하지 못한 아니냐'  피해자를 비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맥락에서 현실을 알고 성적굴욕감 때문에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대법원 판례에 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성인지감수성이 필요한지 일반 평균이 성인지 감수성에 얼마나 결여되어 있는지 있을 것입니다. 이는 대부분 판결인 1심판결이 성인지감수성 없이, 피해자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편견에 근거에서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을 통렬히 비판 판례입니다.  원심이 어떤 편견과 통념에 근거해서 판단했는지 궁금한데요.

성희롱관련 뉴스화면

 A교수는 2015년 교수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여학생들 성추행 하거나 성희롱 발언을 해 학교에서 해임 되었습니다. 뽀뽀해주면 추천서를 만들어주겠다, 남자친구와 사귀지 말고 자신과 사귀자는 발언은 물론이고 엄마를 소개해달라는 모욕적인 발언도 했습니다. 또한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신체접촉 또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A교수는 해임처분을 부당하다며 교원소청심사위 소청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에 해임취소 소송을 냈습니다. 1심법원의 교수가 학생들을 인정된다며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2심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다 며 해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피해 사실은 소극적으로 진술하면서 다른 사람에 비해 사실만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며 성추행 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도 내렸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차 피해를 우려한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고 해서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며 2심 판결 깨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을 심의할 때는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굴욕감 혐오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고 판시했습니다. 앞으로 법원이 성희롱 사건을 다룰 때 세밀한 성인지 감수성을 요구한 것으로 피해자가 처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서 심의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최초의 판결로 풀이됩니다.

 사건은 대학 교수가 학생에게 뽀뽀를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주겠다, 남자친구와 사귀냐 나랑 사귀자, 엄마를 소개시켜달라는 등의 발언을 하고 수업 중에 백허그 자세로 학생일지도 하는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해서 수차례 성희롱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가 징계 해임을 했는데 징계 불복하여 대법원까지 가져온 사건입니다. 원심판결은 어땠을까요? 판결에는 명의 피해자가 나옵니다. 명은 주되게 피해를 신고한 학생이고 명은 본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하고 주로 다른 피해학생의 피해를 증언하면서 도와준 학생입니다. 원심은 교수에 대한 해임 징계가 부당하다고 했고 이유는 크게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도는 성희롱이 아니다 성적굴욕감 내지 혐오감이 드는 행동이 아니다라는 것이고 번째는 피해자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원고가 소속학과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주 농담을 하거나 가족 이야기 연애상담을 나누기도 위로 마우스를 잡거나 어깨동무를 행위는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방법 에서 비롯된 것이고 피해자가 후에도 계속해서 원고의 수업을 수강하는 점을 비추어 성적굴욕감 내지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아니라고 겁니다. 말은 다시 말하면 첫째, 둘의 관계가 친함으로 정도 행동을 있다. 둘째, 가해자 입장에서 그럴 의도가 없었다. 셋째, 성적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꼈다면 피해자가 정도로 행동에서는 되고 강하게 저항 했어야 했다. 그러므로 거꾸로 그런 정도에 행위가 아니다 라는 논리인것이죠.

 다음으로 원심판결은 백허그 행위에 대해서 학생들이 수업을받는 실습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상상하게 어렵다 피해자가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 평가에서 이에 대한 언급없이 원고의 교육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점에 비추어 발생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앞의 친구를 도와준 피해자 대해서는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하면서 친구의 피해 사실에 대해서 증인으로 출석해서 자유롭게 진술하고 있는데 이를 성희롱 피해자의 대응으로 있을지 의문이다. 자신의 피해는 2013년부터 14 전반기까지 일어난 일들이고 진술서 작성은 2013 12 말인데 친구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다면 한참 전의 일을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에 의심스럽다 그래서 진술을 믿을 없다고 것입니다. 이것도 정리하면 성희롱 발생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려운데 이유는 첫째, 행동은 상상하기 어려운 나쁜행동이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 리가 없다 라는 얘기고요. 둘째, 피해자가 당시 거부하거나 불쾌감을 표하지 않고 오히려 지냈으므로 거짓말이다. 셋째, 사실이 있은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신고했고 자신의 피해에는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의 피해를 증언하는 것은 피해자의 적절한 행동이 아니므로 믿을 없다라는 것이죠. 원심판결을 보면 우리 성희롱 사건 판단할 피해자의 대해서 어떤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지를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논리구조를 한번 보세요.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가해자가 그럴리없다 밑도 끝도 없이 피해자의 말을 의심하고 가해자는 옹호하는 논리죠.  그런데 보통 가해자가 조직 내에서 오래 일하고 다른 사람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비밀 유지를 원하고 원하는데 가해자는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보통 사람들은 가해자의 말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메카니즘에 의해서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는 편견이 발전해온 것이죠.  학생은 교수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거부의사나 불쾌감을 표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지내는듯 보이려고 합니다. 문제를 지금 재기하면 교수로부터 바로 불이익이 올꺼라는건 너무 당연하잖아요. 그러니 시일이 지나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는 환경이 되었을 신고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성희롱 발생 이후 한참이 지난 후에 신고 하는 것도 현실에서는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보편적인 피해자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권력관계 위치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 바로 성인지 감수성에 없는 것이고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원심판결은 이렇게 피해자가 겪는 보편적인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것을 피해자의 행동이라고 어렵다고 반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피해자는 성희롱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수업 중에 뛰쳐나가서 라도 성적 침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성적 굴욕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요. 여기에는 어떤 편견이 숨어있을까요? 이 학생은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면 수업을 뛰쳐나가야만 했을까요? 그렇게 하면 이미 성적굴욕감 이라는 정신적 피해를 입었는데 추가적으로 학점도 깎이고 교수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피해까지 감수해야 입니다. 이는 성희롱으로 인해 피해를 이미 입었는데 이를 증명하려면 피해, 다른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저항해야 한다는 논리죠. 권리를 위계화하고 성희롱 피해를 특수한 피해로 만들면서 마치 성적으로 침해 받지 않는 것이 다른 어떤 권리보다 중요하다고 하면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같지만 오히려 다른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성적 피해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 하지 않았다며 피해자를 비난하기 위한 장치일뿐입니다. 마치 피해자를 위하는 것처럼 위장하고는 여전히 정조나 순결 이데올로기로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논리의 연장선인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순결을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을 뿐이죠. 그런 직장을 계속 다니느냐라고 하는 질타도 똑같은 맥락입니다. 여성에게 직업과 노동, 직업적 전망,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성공 같은 중요치 않고 오로지 성적으로 침해 받지 않도록 방어해야한다. 순결을 지키는 것이 어떤 것보다 우선 해야할 가치라고 하는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며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한 이중적 규범 자체인 것입니다. 피해자가 너무 철저히 2 피해예방을 준비하면 피해자 답지 않다고 믿을 없다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피해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피해때문에 패닉에 빠져야 하는데 너무 냉정하고 이성적이라는 것이죠. 이것도 역시 성폭력 피해를 어떤 피해 보다도 심각한 피해를 보고 피해자를 연민하는 같지만 사실 효과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왜곡된 상을 만들어서 피해자를 옥죄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4.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교수가 학생들 같이 친했던 내용 그러니까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성희롱 판단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흔히 행위자와 피해자가 어떤 관계 있는가를 마치 중요한 사건의 맥락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파악할 있는 것은 그들의 객관적인 관계입니다. 사건에서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교수와 학생이죠. 그들이 친하다고 해서 교수와 학생이라는 이들의 객관적인 위치와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달라진다는 행위자에 착각일 뿐입니다. 예컨대 직장상사가 재미없는 농담, 불쾌한 농담을 아마 여러분은 재미없어도 웃으실거예요. 친구끼리 있으면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하겠죠. 하지만 상사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못할 껍니다. 그러면 상사는 본인이 재미있는 착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권력의 힘입니다. 재미없는 불쾌한 농담에 웃었다고 해서 그분과 내가 친해진 아니죠.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높을 같은데요.  행위자와 피해자가 사적으로 어쩌고 저쩌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교수 학생이 아무리 친하고 평소 농담을 했다 해도 평소에 농담조차 학생들이 참아준 것일 있죠. 하물며 그들이 친한지 친한지는 그들 자신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파악할 있는 그들의 관계는 교수와 학생 이라는 관계 뿐입니다. 그러면 관계에서 그런 말들이 적절한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죠. 또 다른 예시는 지자체장이 비서에 대해 업무상 위력등에 의한 추행과 간음죄를 지여 최종 유죄판결을 받은 바가 있죠. 위력이 쉽게 말하면 권력의 차이입니다. 권력에 차이, 지위에 차이 자체를 이용하여 성희롱이 이루어지면 피해자들은 대부분 위력의 때문에 있을 2 3 피해를 막고자 성적 언동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성희롱의 속성입니다. 성희롱은 신체적 접촉이나 음담패설과 같은 언어적 성희롱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 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성적 요구 자체입니다. 위력을 가진 자의 요구는 그냥 요구가 아니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연히 조직에서 조직의 힘으로 그의 위력으로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불이익과 괴롭힘이 동반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희롱의 개념의 성적 요구와 이익공유의 의사표시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피해가 염려되어 그것을 받아들이는 피해자에게 우리는 뭐라고 하나요. 꽃뱀, 성상납, 불륜이것이 바로 우리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번이라도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성적 욕구를 거부하면 괴롭힘을 당하다가 쫒겨나게 되고 받아들이면 성적 착취 당하는 겁니다. 마치 선택지가 있는 같지만 그래서 도덕적 선택을 하지 않았냐고 비난하지만 사실 주어진 선택지는 나쁜 뿐입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고 어쩔 없는 강요인것이죠. 그래서 이런 제한 자체를 불법행위인 성희롱으로 정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도덕적인 것을 선택할 있다고 착각하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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